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탕산 사건 (문단 편집) === 약법 제정 논란 === 북벌 시기, 국민당의 중핵인 중앙정치위원회는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하기 위해 각지에 정치분회를 설치한 바가 있었는데 이러한 정치분회는 각 지방의 군벌들에게 정치분회 영수 자리를 주면서 군벌들을 국민당 곁에 붙여놓을 수는 있었지만 군벌들에게 권력이 분산된다는 문제점이 있었고 훈정을 시작하면서 국민당 중심의 중앙통치를 시행하게 된 이상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기구였다. 이에 국민당은 1928년 정치분회를 폐지하기로 결정하고 지방은 각 성정부에게 맡기기로 했다. 1929년 3월 15일 일괄적으로 정치분회를 폐지한단 결정이 내려지자 군벌들은 더더욱 반발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정치분회는 군벌들에게 정치권력을 주는 기구였는데 가뜩이나 군사도 줄인다면서 정치분회 감투자리도 빼앗아간다는 사실에 군벌들의 분노는 대단했다. 국민당에 불만을 품고 있던 것은 군벌들 뿐만이 아니었다. 후한민같은 당 중심의 당권파들에 반발한 반중앙파들도 국민당 3전 대회 개최에 발을 맞추어 들고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3전 대회란 [[영한합작]] 시기 임시 체제인 [[국민당 중앙특별위원회]] 체제를 종식하고 정상적인 당 운영을 결정하기 위한 대회였는데 각 계파들간의 갈등이 심하여 3전 대회의 개최는 자꾸 미뤄졌다. 원래 1928년 1월 1일에 개최 예정인 3전 대회는 8월 1일로 미뤄졌다가 다시 1929년 1월 1일로 미뤄졌다. 그러나 지방의 당무처리 문제 때문에 1929년 1월 1일 대회도 무산되었고 결국 당 중앙상무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대표선거법 제정을 따로 처리하기로 하면서 3월 15일이 되어서야 겨우 개최될 수 있었다. 하지만 광동파, 광서파, [[서산회의파]] 등 반란 전적이 있는 파벌들의 자격 인정 문제 등이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지방당부의 혼란으로 인해 각 지방에서 대표를 뽑아 난징으로 보내기도 애로사항이 꽃피었다. 결국 중앙이 지방 대표를 임명하는 방식을 취하기로 했는데 이 때문에 비민주적이란 이유로 곳곳에서 반발이 터져나왔다. 각 지방의 반발에 당중앙은 대표 선출을 각 지방의 조직진도 수준에 따라 따로 하기로 했는데 이중에서 당원들의 손으로 직접 대표를 뽑을 수 있을만큼 안정된 곳은 난징, 상하이, 광저우, 광둥 지방당부 뿐이었다. 그리고 이 지역은 서산파와 광동파를 비롯한 반장 세력의 근거지였다. 그러자 중앙에선 반장파의 득세를 막기 위해 대표선출과정에 개입했고 이에 반장 세력은 격렬히 반발했다. 결과적으로 3전대회에서 [[서산회의|서산파]]를 비롯한 반장 세력들은 배제되고 친장 세력들이 중심이 되어 당무, 정치 분야의 사무를 처리했는데 이 때문에 분노한 서산파는 [[1차 장계전쟁]]을 기점으로 광서파와 손을 잡고 반장운동에 나서 [[1차 장풍전쟁]], [[2차 장풍전쟁]] 내내 배후에 있었다. 여기에 장제스 복직 과정에서 배제당한 왕징웨이의 개조파가 끼어들었으며 불만을 품고 있던 군벌들이 가세함으로 [[장당전쟁]]을 거쳐 1930년 [[중원대전]]이라 불리는 거대 내전으로 번졌다. 군벌들이 군사적 실력 행사에 들어간 동안 서산파와 개조파는 확대회의를 소집하고 베이핑에서 독자적 국민정부를 수립했다. 왕징웨이 등은 확대회의선언에서 조속한 국민회의를 소집하고 약법을 공포할 것을 요구했다. 사실 장제스와 후한민 등도 여러차례 국민회의 소집을 논의한 바가 있었으나 계속되는 내전과 혼란 때문에 개최할 여유를 찾지 못했는데 이를 반장 세력들이 좋은 구실로 삼아 쑨원의 유지를 실천하라는 명분을 내세워 들고 일어난 것이었다. 그간 국민당을 지지해오던 자유주의자 재야 지식인들도 국민당의 약법 제정이 비민주적, 반인권적이라 규탄했고 난징 국민정부는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반장 세력은 이에 더 나아가 태원약법을 제정함으로 난징 정부를 장제스 독재라고 규탄했다. 장제스도 이에 대응하여 국민회의를 소집하고 약법을 제정하자고 주장했는데 그간 국민회의 개최와 약법 제정 문제가 오랫동안 거론되었음과 반장 세력들이 약법을 제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제스를 비판한 것을 미루어 볼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후한민은 장제스가 약법을 제정하여 합법적으로 대권을 차지하려 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였다. 만약 약법이 제정된다면 그간 당 중앙상무위원회에서 임명하던 당 주석과 정부 5원장을 총통이 임명하게 되는데 만약 국민회의에서 장제스가 총통으로 선출된다면 장제스가 국민당을 장악하게 되는 것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